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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 고공행진에 꺾인 날개… 해외여행 열기 식고 ‘짠물 투어’ 늘었다

자영업자 이 모 씨(47)는 지난 10월 황금연휴를 맞아 계획했던 미국 뉴욕 여행을 전면 취소했다. 항공권 가격은 감당할 수 있었지만,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환율이 문제였다. 박 씨는 “숙박비와 식비, 쇼핑 예산을 다시 계산해보니 두 달 전 계획했을 때보다 비용이 20% 이상 불어났다”며 “환전 앱을 켤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가까운 일본으로 행선지를 돌리기로 했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억눌렸던 수요가 폭발하던 이른바 ‘보복 여행’ 열풍이 고환율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선을 위협하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해외여행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거나, 장거리 대신 단거리를 택하는 ‘짠물 투어’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 심리적 저지선 뚫린 환율, 여행객 지갑 닫게 해

최근 외환시장은 여행객들에게 공포 그 자체다. 미국의 고금리 기조 장기화 전망과 중동 정세 불안이 맞물리며 ‘강달러’ 현상이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여행 업계에서는 환율 1,350원을 해외여행 심리를 좌우하는 심리적 저지선으로 보고 있는데, 이미 이 선을 훌쩍 넘어선 상태다.

아래의 그레프에서 볼 수 있듯, 최근 1년간 원·달러 환율은 완만한 상승세를 넘어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여행 성수기를 앞둔 시점에 환율 변동성이 커지며 여행객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현지에서 사용하는 체류비 부담은 상상을 초월한다. 과거 1달러당 1,100원 시절 100달러짜리 식사는 한화 약 11만 원이었지만, 지금은 14만 원에 육박한다. 4인 가족 기준 4박 5일 일정이라면 환차손으로만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 단위의 추가 지출이 발생하는 셈이다. 여행 커뮤니티에는 “호텔 결제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다”, “컵라면을 캐리어 가득 채웠다”는 자조 섞인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 데이터로 확인된 ‘장거리 여행’ 기피 현상

이러한 비용 압박은 실제 출국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국가통계포털(KOSIS)과 한국관광공사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초까지 전년 대비 세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던 내국인 출국자 수는 2분기 들어 상승 폭이 현저히 둔화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여행지의 양극화다. 미주나 서유럽 등 고비용 장거리 노선의 예약률은 정체 상태인 반면, ‘슈퍼 엔저’ 현상이 지속되는 일본이나 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 지역의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다.

◆ “가성비 아니면 안 간다”… 여행의 구조적 변화

여행업계 전문가들은 지금의 현상이 일시적인 위축을 넘어 여행 소비 패턴의 구조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무조건 떠나고 보는 시기는 지났으며, 철저하게 예산을 따지는 ‘스마트 컨슈머’ 성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고환율이 장기화되면서 패키지 상품도 ‘가성비’를 강조한 상품이나 자유 일정이 포함된 세미 패키지가 인기”라며 “환율 리스크가 해소되기 전까지는 장거리 여행보다는 일본, 동남아 중심의 단거리 여행 쏠림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편, 고환율의 반사이익으로 국내 여행이 다시 주목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해외로 나가는 비용 부담이 커지면서 제주도나 강원도 등 국내 주요 관광지로 발길을 돌리는 ‘유턴족’이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1,400원 환율 시대, 합리적인 소비를 원하는 여행객들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대찬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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